북경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고 있는 영채신은 곽북현에 이르러 하루 묵을 곳을 찾아 헤매다 아름다운 낭자 섭소천의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친 영채신은 난약사라는 절을 발견하고 절에 기거하고 있는 퇴마사 연적하에게 허락을 구하고 하룻밤 묵게 된다.
천년묵은 나무요괴는 인간이 되는 수행을 쌓기 위해 백면서생의 순수한 양의 정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를 노리고 섭소천을 다시 보내지만 오히려 섭소천과 영채신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영채신은 섭소천이 요괴라는 것을 알아채지만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천년묵은 나무요괴는 연적하가 물리치지만 영채신을 잡아오지 못한 섭소천은 약속대로 만년묵은 흑산의 늙은 요괴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연적하의 도움으로 저승도 이승도 아닌 흑산으로 섭소천을 찾으러 간 영채신은 다행히 그녀를 구해내게 되지만 거대한 괴물로 변한 흑산노요가 뒤따라 오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일전을 벌인 연적하와 또다른 퇴마사 지추일협이 간신히 퇴치한다.
흑산노요가 죽으며 그가 품고있던 수십만의 원혼이 풀려나게 되고 이에 따라 환생의 수레바퀴가 나타나 주위의 원혼들을 빨아들이게 된다. 원혼이던 섭소천도 이에 빨려들어가게 되자 영채신이 그녀를 붙잡지만 연적하는 환생의 수레바퀴에 빨려들어가야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모든 일이 끝이 나고 연적하는 난세의 인간보다는 태평한 개가 낫다면서 영채신에게 같이 요괴나 잡으면서 여기 살자고 권유한다. 하지만 섭소천의 집안 사정에서 고위 관리의 그릇된 행동이 가져온 안타까운 결과를 모두 전해 들었던 영채신은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훌륭한 관리가 되겠노라 말하며 다시 과거시험 길에 오른다.
훗날 관리가 되어 시종과 함께 그림을 사러 나온 영채신은 문득 스쳐 지나간 여인의 뒷모습에서 섭소천을 느껴 그녀의 이름을 나직히 부르게 되고 돌아보는 여인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천녀유혼 : 인간정>은 장국영과 왕조현이 주연으로 출연한 1987년 作 <천녀유혼>의 리메이크작으로 유역비가 섭소천으로 나오는 2011년 천녀유혼에 비해 원작의 설정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다. 눈에 띄는 다른 점이 있다면 영채신이 원래는 말단 세금 징수 관리였는데 여기서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로 바뀐 점 정도일까?
원작의 왕조현의 외모와 연기가 너무 찰떡처럼 섭소천에 어울리는지라 <천녀유혼 : 인간정>에서 주연을 맡은 이개형의 연기가 다소 아쉽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충분히 나름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에서 섭소천 역을 맡은 이개형과 영채신 역을 맡은 진성욱 그리고 연적하 역의 원화는 여태 봤던 천녀유혼의 아류작들 중에서는 가장 역할에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약간 병맛같은 느낌이지만 조금씩 빠져드는 퇴마사 연적하와 지추일협의 코믹하고 츤데레같은 관계가 좋았으며 영채신까지 포함해 셋이서 티격태격하는 씬이 조금 더 분량이 많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까지 들었다.
한편 영채신은 원작과는 다르게 끝까지 순백의 바보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는 섭소천과 연적하를 통해 평생 겪어보지 못할 큰 일을 겪은 후 도리어 의연한 선비로 변했으며 이 부분은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섭소천의 가족에게 참극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가슴에 품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섭소천이 자신들은 곤륜산 삼천약수(삼천약수는 곤륜산을 휘감고 흐르는 강으로 아무리 가벼운 물건이라도 깊이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한다고 알려진 전설의 강이다)에 떨어진 깃털과 같다면서 한탄하던 모습이나 영채신을 유혹하러 갔다가 실패한 후 영채신이 자기 앞에서 읊던 시를 다시 읊어보는 그녀의 모습이 애절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그리워하는 이는 강 건너에 서있네」
그들은 자신들이 읊던 시처럼 서로 강을 마주 보고 서서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인 걸까?
이 영화의 영상미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며 특히 흑산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어두운 색감이 잘 어울리는 분위기는 마치 사일런트 힐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난세의 인간보다는 태평한 개가 낫다고 일침하는 연적하와 그래도 자신은 명예로운 선비정신을 지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공명정대한 관리가 되겠노라 단호히 말하고 난약사를 떠나는 영채신의 모습이 뒤섞인 마지막 씬은 시종일관 떠들썩하던 이 영화에서 가장 장중하고 심지 곧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곧 이 영화의 또다른 주제의식이 담겨져 있는 장면이라 여겨진다.
웹영화로써 자금의 한계 때문인지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 부분에서는 많은 미흡한 점이 느껴졌다. 특히 할리우드의 세련된 특수효과가 눈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원작을 충실히 따르면서 적절한 주제의식과 아름다운 영상미를 더한 꽤 괜찮은 영화 한 편을 감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역시 왕조현과 장국영을 넘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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