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로그 리뷰 (Rogue, 2020)

산으로 가는 예고편 2020. 9. 20. 09:24

영화의 제목인 Rogue는 무리에서 따로 떨어진 암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쩌면 본대와 떨어져 고립된 샘의 일행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겠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영화에서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아마도 부정적인 묘사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알샤바브 반군이 그 지역 통치자(governor라고 나오는데 미국의 주지사 같지는 않다)의 딸인 아실리아를 납치한다. 딸을 인질로 그 주변 지역을 지배하고 이권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샘 오하라는(메간 폭스) 아실리아의 아버지와 계약을 맺은 용병단 본부의 지시로 그녀를 구하러 출동했지만 마침 같이 억류되어 있던 소녀 티제이와 테샤를 함께 구해 탈출한다. (샘은 처음에 돈이 안된다며 아실리아만 데려가려 했지만 팀원들의 설득으로 나머지 두 명도 함께 구한다 - 말렸어야 했다. 불평을 쏟아내며 울먹이는 새된 비명소리가 아직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반군에게 쫓기던 일행은 격렬한 전투 끝에 그들을 떼어놓는데 성공하고 도주하던 길에, 버려진 농장을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통신 장비를 고쳐 용병단 본부에 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사람을 찢어 죽이는 암사자가 숨어있다.

 

그들은 사자의 위협과 반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인가?

 

테러리스트의 잔인함과 아프리카 사자 농장의 참상을 알리고 싶은 감독의 의도를 이해는 했지만 감독이 갈등을 일으키고 해소하는 과정을 만드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의 카체이싱 장면에서도 그렇지만 2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데 표적에 맞는 총탄이 거의 없다는 것부터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억지스러운 부분은 사자 농장에서 자신들을 구해준 용병을 소녀들이 닥달하는 장면이다.

 

소녀들을 구해준 용병 중의 한 명인 파타는 이 농장에서 계속 머물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알샤바브와 그들의 지도자가 얼마나 잔인하고 끈질긴지 이야기해주며 계속 이동하여 그들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때 그들이 구해준 테샤가 반군들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며 반문한다. 그러자 파타는 자신도 과거에 반군에 있던 적이 있었다고 말해준다. 이에 테샤는 자신을 구해준 파타에게 갑자기 총부리를 들이대며 분노를 표출하고 "너희 반군들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냐"면서 파타에게 "너는 악"이라고 소릴 지른다.

 

다른 용병 샘과 조이는 미안한듯 고개를 떨군다. 응?

파타가 반군에서 도망쳐 나온 건 적어도 수년 전 일이고 인질들이 납치된 건 얼마 전이다 그리고 파타는 목숨걸고 자신들을 구해줬...

 

사실 파타는 일가 친척과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반군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파타는 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목숨을 걸고 탈출했지만 얼마 뒤 반군들이 찾아와 자신의 자식들과 일가 친척들까지 모두 몰살해버렸다.

 

이 사연을 방금 들었으면서도 아실리아는 타샤에 이어 "잘 들어봐"라는 표정으로 자기가 납치당할 때 당했던 사건을 파타에게 퍼붓는다. 그리고 "니가 내 친구들 다 죽였다"고 울부짖고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반군이 쫓아오고 사자가 사람을 찢어 죽이는 긴박한 상황에 마치 모노드라마처럼 독백하듯 절규하며, 자신을 구해준 용병이 십여년 전에 강요에 의해 반군에 몸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표독스러운 대사를 내뱉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생뚱맞다.

 

게다가 내가 보기엔 그녀들의 연기가 너무... 감정 과잉인듯하다. (이미 여자들이 내게 밉상으로 인식되어서 안 좋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아실리아의 절규에 파타가 자기는 인질 같은 건 모른다며 항변하자 그녀는 더욱 거세게 "그 인질들에게도 이름이 있었어요",  "우리도 이름이 있다구요!"라며 울부짖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파타가 반군에서 도망쳐 나온건 적어도 수년 전 일이고 그녀들이 납치된 건 얼마 전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녀는 반군들에게서 도망친 댓가로 자신의 자식들이 살해당한 파타에게 "니 애들 이름은 뭐냐?"라고 패드립을 시전하며 계속 따지고 들고 파타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다... 응?

 

호랑이라도 찢어 죽일 듯 권총을 들고 파타에게 드잡이 질을 하던 소녀들은 정작 사자나 반군이 나타나면 친구도 내팽개치고 도망가기 바쁘다. 파타는 착해서 위협하고 조롱해도 가만히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영악한 짓이다, 정의롭지가 않아.

 

사실 암사자가 농장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새끼 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샘의 일행을 추적해 농장까지 쳐들어온 반군들을 포함하여 이미 수십 명이 죽어나간 상황에서 샘이 암사자를 이용해 적의 두목까지 죽인 후에 결국 조이가 찾아낸 새끼 사자들로 인해 사람들을 찢어 죽이던 암사자는 마치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인양 온순해져 새끼사자들을 데리고 떠난다.

 

암사자가 새끼 사자를 지키기 위해 농장에 홀로 남아 살육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 애들과 샘은 그 모성애에 감동한다. → 이 사자는 자신들을 구해준 용병들만 셋이나 물어 죽였다.

때마침 그들의 머리 위로 어젯밤 조이와 샘이 통신 장비를 고쳐 본부에 지원을 요청해두었던 구조 헬기가 나타난다.

 

암사자가 떠나가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아실리아는 "She reminds me of someone I know"(암사자가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네요) 하며 샘을 쳐다본다 샘이 자신들을 지켜줬다는 거다.

이에 조이가 "Hey, what am I, chopped liver?" (나는 어땠냐, 아무 소용없었냐?)라고 묻자 테샤가 "Hey, you did okay. I mean, for a guy"(당신도 잘했어요, 남자치고는)이라고 밝게 웃으며 칭찬한다. 응?

 

조이는 약간 사이코 같지만 애들을 구출하다가 총상을 입었고, 통신 장비를 돌릴 전기를 복구할 발전기 연료를 찾아냈으며, 탄약이 다 떨어진 상황에서 탄알이 9발이나 들어있는 리엔필드 소총을 구해와 반격의 실마리를 찾아냈고, 다 죽어가던 동료 보를 살려냈으며, 자기도 사자에게 습격당해 왼쪽 팔과 다리가 너덜너덜한 상황에서도 수많은 반군들을 죽였고, 새끼 사자들을 발견해서, 암사자 앞에서 All hail the queen(여왕폐하만세)이란 이해 못할 대사를 치며 죽음을 기다리던 샘을 구해냈다. 남자치고는 잘했다는 칭찬은... 정의롭지가 않아.

 

정작 초반에 잠깐 비친 아프리카의 사자 농장에 대한 비판은 영화가 끝난 후 나레이션도 아닌 텍스트 열 줄 정도로 마무리한다.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 밀매와 도살을 고발하고, 광활한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멋진 액션도 찍고, 크리처물이 제공하는 오싹한 스릴도 만끽하고, 남성들에게 뒤지지 않는 걸크러쉬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였으나, 그 과정이 세련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CG의 어색함 같은 것을 논하기에 앞서, 차라리 위의 네가지 중에서 하나의 주제를 제대로 설정하고 잘 짜여진 각본으로 현실감 있게 영화에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소재도 흥미롭고 큰 기대감없이 킬링타임용으로 소비하기에는 손색이 없을듯하다.

 

 

 

참고>

여기 등장하는 아프리카의 트로피 사냥이란 일정 구역 안에 동물들을 풀어놓거나 몰이를 해줘서 돈을 지불한 고객이 총으로 사냥할 수 있도록 오락을 제공해주는 일을 말한다. 그런 다음, 기념사진도 찍어 주고, 벽에 거는 박제도 만들어주고, 가죽도 벗겨서 기념품으로 주고, 이빨도, 상아도, 뿔도 기념품으로... 이런 야만스러운 짓을 하는 일이다.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사자 농장이 있고 이 트로피 사냥은 국가가 공인해 주는 합법 행위이다.